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찰스 테일러(철학자) (문단 편집) == 생애 == 테일러는 1931년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캐나다는 영어권과 불어권으로 구분되는데 몬트리올은 불어권에 속하며 가톨릭 세력이 강한 곳이다. 테일러 자신은 가톨릭 신자이며 교황 자문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의 부계는 영어권에, 모계는 불어권에 속한 환경 덕분에 그는 어려서부터 영어와 불어를 함께 사용하면서 두 문화권 모두에 익숙해 졌다. 이러한 성장 환경은 후에 그의 다문화적 사회에 대한 이해와 철학에, 그리고 퀘벡을 위한 그의 정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테일러가 학위를 위해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옥스퍼드 대학]]에 도착한 것은 1953년이었다. 이때의 옥스퍼드 대학은 진정한 철학적 방법으로 언어 분석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였다. 이 시기에 쓰여진 『현상학과 언어 분석』이라는 1959년의 논문에서 테일러는 언어 철학에 대한 양면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논문에서 테일러는 한 언어에 담긴 의미를 다른 언어로 남김없이 옮겨 낼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또는 본질주의적 언어관이 오류라는 점을 일상언어 분석을 통해 적절히 보여주는 점은 큰 공헌이지만, 일상언어 분석의 방법에 함축된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전제들이 간과되는 경향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일상언어를 상식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가운데 그 속에 담긴 역사성을 간취하지 못하는 점도 비판한다. 1956년에는 헝가리의 자유화 운동에 대한 소련의 탄압으로 인해 망명한 학생들을 돕는 운동에 몰두한다. 1957년에는 반핵 운동을 위한 옥스퍼드 대학 내의 조직의 장을 맡는데, 이때 《대학과 좌파 리뷰》라는 사회주의적 성향의 잡지 창간에 참여한다. 이 잡지는 후에 《뉴 레프트 리뷰》라는 유명한 좌파 성향의 잡지로 거듭나게 된다. 이처럼 테일러는 1961년까지 옥스퍼드의 신좌파 운동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의 졸업과 더불어 이 운동은 전성기를 벗어나게 된다. 학위를 취득한 뒤 1961년에 귀국한 테일러는 맥길대와 몬트리올대에서 철학과 정치학을 가르친다. 60년대의 저술 활동은 주로 당시 풍미하던 행동주의에 반대하는 인식론적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아울러 그는 현실 정치인으로 정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때 캐나다에서는 신민주당이 결성되면서 민주적 좌파 운동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테일러는 이 당이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부합하는 현실적 정치 조직이라고 생각하여 참여한 것이다. 이후 이 당을 통해 몇 차례 의회 진출을 시도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실패하는 등 정치적으로는 불운하였다. 그러나 테일러는 지속적으로 신민주당의 이론가로 활동하였을 뿐 아니라 경제적 자립, 민족주의, 헌법, 지역 활성화 문제 등과 관련된 많은 안들을 제출하여, 신민주당의 주요 정책 입안자로 간주되었다. 1970년에는 《정치의 유형The Pattern of Politics》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당시 [[피에르 트뤼도|트뤼도 수상]]의 자유주의 노선을 비판하였고, 캐나다 정치에 대한 사회 민주적 변혁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 저술로 또다시 테일러는 정치적으로 유력한 인물로 부상하였고 이듬해 신민주당의 연방 조직의 의장직에 추천되었다. 그러나 이때 테일러는 정치 활동의 중지를 결심하고 추천을 사양하며, 당시 갖고 있던 신민주당 퀘벡주 부의장직도 사임하면서 정당 생활을 청산한다. 후에 테일러는 이것이 정치를 그만둔 것이 아니며 그 후에도 현실 문제에 관심을 유지하였다고 말한다. 다만 이러한 결정의 이유는 옥스퍼드 시절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독일의 낭만주의 운동의 철학적 중요성을 정리하는 작업을 헤겔 연구를 통해 진행하려고 했는데, 이 작업을 위해서는 집중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므로 현실 정치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테일러는 1973년에 맥길대 교수로 부임하였고, 1975년에는 600여 페이지로 된 연구서 《헤겔》을 저술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1976년에 테일러는 옥스퍼드 대학에 초빙을 받아 강의와 연구에 몰두하였고 《헤겔철학과 현대의 위기Hegel and Modern Society》(1979)를 출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5년 후 캐나다 맥길대로 복귀한다. 이는 1980년대 초부터 발생한 영어권 캐나다와 불어권 캐나다 사이의 갈등과 퀘벡주의 분리운동 때문이었는데, 테일러는 여기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인식하고 귀국을 결심하였던 것이다. 맥길대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테일러는 이 현안에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저술가로서 또 사상가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퀘벡|퀘벡주]] 분리 운동에 관한 테일러의 참여는 그로 하여금 다문화 사회에서의 정치적 태도에 대해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 개념을 정립하는 방식으로 철학적 결실을 맺었다. 이후 퀘벡주 문제는 다문화주의 논쟁과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 현상학적 정치이론 등에서 전형적인 예로 사용이 되고 있으니, 이는 전형적인 캐나다의 문제를 오늘날의 정치 철학적 논의의 핵심 문제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 연구를 통해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현대적 중요성을 분석하는 작업은 테일러의 정치철학과 현대의 문제에 대한 분석 및 해결책의 모색으로 이어진다. 헤겔 연구는 이론적 관점에서의 현대성 해명이며, 계몽주의의 인간관 및 사회관과 현대의 산업 발전과 맞물리면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낭만주의적 대처와 저항의 성격을 구명하는 것이었다. 1985년의 《인간 행위자와 언어: 철학논문집 1》과 《철학과 인문과학: 철학논문집 2》는 인식론과 연관하여 언어가 갖는 정치철학적 문화론적 중요성의 구명과 연결된다. 1989년의 《자아의 원천들: 현대적 정치성의 형성》과 1991년의 《불안한 현대사회》[* 이 책은 이듬해에 《진정성의 윤리The Ethics of Authenticity》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다시 출간된다.]는 현대성의 해부이자 테일러 나름의 해결책 제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2000년도 들어서는 《현대종교의 다양성 (2002)》, 《근대의 사회적 상상 (2004)》, 《A Secular Age; 세속화 시대(2007)》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현대를 종교의 세속화 과정으로서 분석하고, 종교와 초월의 문제, 정치적 정체성과 종교적 정체성의 연관성과 차이 등을 연구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